정순왕후는 누구인가?
정순왕후는 누구인가?
  • 정지선 기자
  • 승인 2010.04.22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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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비로 평생 비운의 삶을 살다간, 이 여인을 기억하는가

정순왕후 송씨, 그 여인을 아는가? 단종비로서, 평생 비운의 삶을 살다간 여인이었다. 그 여인의 삶을 통해 진정한 충절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단종의 어진

젊은 나이로 문종이 요절하자 그의 열두 살 난 아들 단종이 왕위에 올랐다. 판돈녕부사 송현수(宋玹壽)의 딸로 태어난 정순왕후는 성품이 공손하고 검소해 가히 종묘를 영구히 보존할 만한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1453년(단종 1년)에 간택되고, 이듬해 왕비에 책봉된다.

열다섯의 나이로 조선의 국모가 된 그녀에게 시부모는 커녕 수렴청정을 해줄만한 시할머니조차 없었다. 열네 살의 어린 왕과 열다섯 살 난 왕비가 의지할 수 있는 피붙이는 수양대군을 비롯해 여덟 명이나 되는 야심만만한 숙부들뿐이었고 정치적 야욕이 강한 숙부들은 어린 왕에게 의지처이기 보다는 위협적인 존재일 뿐이었다.

재주와 지략이 특출했던 수양대군은 단종의 치세기간 동안 할아버지 태종과 아버지 세종이 힘겹게 쌓아올린 조선왕조가 한 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고 판단하고 결국 자신이 직접 왕이 되기로 결심했다.

신변의 위협을 느낀 단종은 왕위를 수양대군에게 양위한 후 상왕으로 물러나 수강궁으로 옮겨 살았고 수양대군이 왕위에 오름으로써 이 골육상쟁(骨肉相爭)은 일단락되는 듯 했다. 하지만 곧이어 성삼문과 박팽년 등 훗날 사육신으로 불리게 된 이들이 단종 복위를 계획하다 발각되는 사건이 일어나고 세조는 단종을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등해 영월 청령포로 귀양을 보냈다.

그러나 그해 9월 금성대군이 단종 복위를 꾀하다 발각되는 사건이 또 다시 발생하자 세조는 후환을 없애기 위해 부득이 자신의 친동생 금성대군과 조카 단종에게 사약을 내렸다. 세조의 오랜 친구인 정순왕후의 아버지 여량부원군 송현수도 이 역모를 함께 도모했다는 이유로 교형에 처해졌다.

남양주 진건읍에 위치한 정순왕후 송씨의 능(사적 209호)

단종이 유배를 당할 때 정순왕후는 남편을 따라 가지 못하고 도성 밖으로 쫓겨났다. 그리고 단종과 헤어진 지 4개월 뒤인 세조 3년(1457) 10월 21일, 영월에서 노산군이 사약을 받고 숨을 거두었다는 소식을 들었고, 그 뒤부터 동망봉에 올라 단종의 고혼(孤魂)이 헤매는 영월을 바라보며 명복을 빌었다고 한다. 이후 단종이 유배를 간 동쪽(강원도 영월)을 바라보며 60년이 넘도록 그의 명복을 빌었다. 문종, 단종, 세조, 예종, 성종, 연산군, 중종 7대에 걸쳐 살다간 정순왕후는 82세(1521년, 중종 16)로 생을 마감한다.

서울문화투데이 편집부 press@s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