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을 손에 쥐고 죽는 게 소원이요"
"붓을 손에 쥐고 죽는 게 소원이요"
  • 박기훈 기자
  • 승인 2010.05.26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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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화단의 거성 전혁림 화백 25일 별세

[서울문화투데이=박기훈 기자] 국내 미술계의 큰 별이 떨어졌다.

▲색채의 마술사 고 전혁림 화백이 살아생전 그의 아들전영근 화백과 함께 있는 모습

국내화단의 최고 원로이자 이 시대의 위대한 화가 전혁림 화백이 지난 25일 경남 통영 세계로 병원에서 18시 50분경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6세.

‘색채의 마술사’ 또는 ‘바다의 화가’로 불린 전혁림 화백은 한 세기를 지나 한국현대사의 격동기(일제시대, 한국전쟁 등)와 다양한 문화 변동을 살아낸 이 시대의 위대한 화가였다.

1915년 9월 17일 통영 출생으로 통영수산전문학교를 졸업한 고인은 독학으로 그림을 익혔다. 1949년 제1회 국전 입선을 시작으로 2회에는 문교부장관상을 수상, 4회에는 특선을 하면서 두각을 나타냈다.

▲국내 화단의 현존하는 최고 원로였던 고 전혁림 화백의 살아 생전의 모습

평생 고향 통영을 떠나지 않고 고향을 소재로 그림을 그렸던 고인은 젊은 시절 동랑 유치진, 청마 유치환, 윤이상, 초정 김상옥, 대여 김춘수 등 통영이 배출한 문화예술 대가들과 동시대를 호흡하며 통영문화협회를 창립해 한글강습회를 열기도 했다.

고인은 서양화 기법과 우리 전통의 미를 결합한 작품세계로 잘 알려졌다. 통영의 바다를 연상시키는 짙은 청색 등 전통적 오방색을 바탕으로 추상과 구상을 넘나들었으며, 고기잡이배 등 바다 풍경을 비롯해 목기, 보자기 등 전통 이미지를 형상화한 작업을 계속했다.

2002년 국립현대미술관이 선정하는 ‘올해의 작가’로 대규모 개인전을 가졌고, 2005년에는 경기 용인시 이영미술관에서 ‘구십, 아직은 젊다’전을 여는 등 최근까지도 붓을 놓지 않고 국내 최고령 현역 작가로 활동했다.

2005년 전시 때는 고 노무현 대통령이 전시를 본 후 1,000호(가로 7m 세로 2.8m) 크기의 대작 ‘통영항’을 구입해 세간의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그림은 당시 외국 귀빈을 접대하는 청와대 인왕홀을 장식했다.

“아흔아홉까지는 살아야지. 붓을 손에 쥐고 죽는 게 소원이요”라고 말했던 고인은 지난 4월 28일 본지 주최, 주관으로 열렸던 ‘전혁림ㆍ전영근 2인 초대전-아버지와 아들 동행 53년’ 오픈 기념식 때 정정한 모습으로 상경해 많은 이들의 축하를 받았었다. 

▲지난 4월 28일 열렸던 ‘전혁림ㆍ전영근 2인 초대전-아버지와 아들 동행 53년’ 에서 언론매체와 인터뷰를 하고 있는 전혁림, 전영근 화백 부자의 모습

하지만 “눈 감기 전에 아들과 같이 전람회를 하고 싶다”는 뜻으로 연 이 전시가 그의 마지막 전시로 남게 됐다는 소식이 퍼지자 많은 문화계 인사들은 침통함을 감추지 못했다.

한편, 유족으로는 아들 전영근 화백(54)을 비롯한 1남 1녀가 있다. 대를 이어 화가의 길을 걷고 있는 전영근 화백은 파리 유학 후 고향에서 부친의 작품 활동을 도왔고, 2003년 통영에 전혁림미술관 건립을 주도했다.

고인의 빈소는 통영시 서호동에 있는 숭례관(055-641-2828)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29일 오전 11시, 장지는 경남 통영시 산양읍 풍화리 선영이다.

장례절차는 통영문화예술인장으로 거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