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브즈만칼럼]故 전혁림 화백 타계와 <전혁림, 전영근 2인 초대전>
[옴브즈만칼럼]故 전혁림 화백 타계와 <전혁림, 전영근 2인 초대전>
  • 최진용/문화예술경연연구소장
  • 승인 2010.05.31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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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전에서 전 화백의 목소리를 좀 더 깊이있게 다뤘어야

 전혁림 화백과 아들 전영민 화백의 초대전이 열렸다. 통영 사는 사람이면, 누구나 한번 쯤 이름을 들어봤다던 이 두 화백들. 아버지 전혁림화백이 지난 5월 25일에 작고하였다. 호적 나이로는 95세지만 본 나이는 97세라고 전한다. 예술가란 오래 살아야 된다는 말이 있는데 그만큼 창작의 시간이 많아야 한다는 것이다. 전혁림화백도 오래 살았기 때문에 많은 작품을 남겼다.

만년에까지 붓을 놓지 않았던 의욕도 의욕이려니와 삶과 예술을 일체화시키려는 의식은 주변에 깊은 감명을 안겨준바 있다. 살아있기 때문에 그리고 그리기 때문에 살아있다는 의식이야말로 참다운 예술가로서의 모습이 아닌가. 전혁림화백은 정식의 미술수업을 받지 않았다는 점에서 독학에 의해 자기세계를 엮어간 작가로 꼽을 수 있다.

그는 부산을 위시한 경남일대를 전전하였으며 서울에도 한동안 진출한 바 있다. 그러나 중반이후 고향에 돌아가 살았다. 향리인 통영은 그에게 영감의 원천이었고 그의 예술을 살찌운 터전이었다. 그의 예술은 통영을 떠나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밀착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엇보다 전혁림화백의 예술가적 면모는 노년에까지 이어진 창작욕과 기폭이 심하지 않은 창작의 리듬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서울인사아트센터에서 아들 전영근씨와 2인전을 가진바 있으며, 수년전엔 경기 이영미술관에서 90에도 붓을 든다는 의욕의 개인전을 열어 주변을 놀라게 하였다. 이때 나온 작품의 연작과 대작의 다수는 그의 넘치는 창작의욕을 반영해 준 것이었다. 90에도 붓을 든다는 것이 단순한 시늉이 아니라 여전히 창작생활이 원만하다는 것을 과시한 것이다.

타계한 전혁림 화백에 대한 기사는 그런 면에서 뜻 깊은 것이다. 이제는 떠나고 없는 대가(大家)의 목소리가 실려 있기 때문이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기사가 이 부자(父子)의 초대전에 관한 이야기라고 할지라도, 초대전 뿐 아니라, 두 화백의 목소리가 실렸으면 좋았겠다라는 생각이다.

100년에 가까운 세월을 그림에 바친 노작가의 생생한 목소리는 비단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아닐지라도 (한 세월을 바쳤다는 면에서)감명받을 것이었을 텐데 그 목소리가 너무 적었다.

거기에 작품에 대한 소개나, 전시회에 대한 이야기는 전 화백에 대한 진지한 소개가 아니라, 그저 일반적인 소개에 그친 것으로 보여 안타깝게 느껴진다. 전화백은 그림을 통해서 이야기하는 화백이지만, 그럼에도 전화백의 울림은 그림이 아닌 곳에서도 존재하고 있다. 그 울림을 제대로 싣지 못한 기자들의 시선이 씁쓸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