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영 통영시청 문화예술과장이 전혁림 화백께 올리는 글
김상영 통영시청 문화예술과장이 전혁림 화백께 올리는 글
  • 김상영 통영시청 문화예술과장
  • 승인 2010.06.01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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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을 만나 통영에서의 이야기보따리를 맘껏 풀어 놓으소서

우리 화단의 거목인 고 전혁림 화백의 장례가 통영 예술인장으로 치뤄지면서 장례기간 동안 앞장서 모든 일들을 챙기며 빈소와 시민분향소를 오가며 5일장 내내 자리를 뜨지 않았던 김상영 통영시청 문화예술과장. 그가 지난 29일 열린 고 전혁림 화백의  영결식 사회를 맡아 모든 제례 순서를 한 편의 시와 같은 언어로 진행해 참석자들로부터 많은 감동을 자아냈다. 김과장의 말을 글로 적어 고 전혁림 화백에 대한 그의 절절한 추모의 마음을 전한다.  -편집자 주

전혁림 화백님.

비온 뒤 미륵산에서 지핀 안개가 머리채를 풀고 비탈길을 넌지시 내려오는 봉숫골.
흐드러지게 핀 벚꽃이 바람결에 힘들어 하지 않고 사뿐히 내려 앉아 쉴 수 있는 곳.
아장아장 꼬마가 길을 잘못 들어도 엄마의 시야에서 벗어나지 않는 거리.
그런 소담한 곳에 아름답고 향기가 스며있는 그림 밭이 있다.
전혁림 미술관
그 망백(望百)의 노 화가는 연두 빛에 물든 산야에 짙은 녹음을 드리우는 5월 25일
홀연히 하늘나라도 떠나셨다.

▲김상영 통영시청 문화예술과장
오늘 화백님께서 가시는 길은 천상병 시인의 말처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잡고 이승에서 있었던 아름다운 소풍 이야기를 자랑하러 가는 귀천(歸天)입니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다음을 위한 휴식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잠시 자리를 비운 것으로 여길렵니다.

화백님은 복(福)도 많으십니다.
5일장 내내 이렇게 맑은 하늘을 기대하지는 않았습니다만 하늘도 선생님을 기억하고 계셨던 모양입니다.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면 문학을 했을것이라고 하셨죠. 혈기 왕성한 젊은시절 통영문화협회를 만들었던 유치환, 김상옥, 김춘수 등 문학도를 만날 수 있어 좋겠습니다.
또 특별한 분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아흔에 소풍을 떠난 피카소 말입니다. 일류는 일류를 알아본다죠? 금방 알아보시고 친해질 것입니다.

누군가 푸르고 아름다운 통영바다를 원고지에 옮기면 유치환의 시(詩)가 되고, 오선지에 옮기면 윤이상의 음악이 되고, 화폭에 담으면 전혁림의 그림이 된다고 했습니다.
오늘 영결식이 있는 강구안은 화백님께서 화폭에 즐겨 담으시던 코발트불루를 뿌려 놓은 듯합니다.

화백님께서는 우리에게 그림만 선물한 것이 아닙니다. 많은 국가 지도자들에게 용기를 주셨습니다. “90, 아직도 젊다”는 수원 이영미술관 기획전을 찾아오신 노무현 대통령 내외분, 김형오 국회의장님,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님이 그랬습니다.

어떤 때에는 천진난만한 어린아이 같았습니다.
유치원생, 초등학생들이 찾아오면 같이 사진을 찍어주던 모습은 90의 어린아이였습니다.
지난 4월 28일 서울 인사동에서 “부자 동행전”이 있던 날, 아침 일찍부터 서울에 가실 차비를 하셨다니 이것이 소풍가는 어린 아이의 마음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때부터 소풍가는 오늘을 손꼽아 기다리셨습니까?

언젠가 “요즘도 작품을 구상하고 계십니까”라는 질문에 “그래, 굉장한 아이디어가 떠올랐어”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그 작품이 청와대 인왕홀에 걸린 작품이란걸 뒤에 알았습니다. 젊은 우리가 부끄러웠습니다.

화백님의 가족사랑은 남달랐습니다.
며느리가 해 주는 음식은 맛있다며 하나도 남기지 않으시고 부모 때문에 더 큰 꿈을 펴지 못한 혼자뿐인 아들에게 늘 미안해 하셨습니다. 막내 손자가 얼마나 보고 싶었으면 운명 하루 전에 제대를 했겠습니까? 며느리 또한 아래층에 계시는 아버님의 기침 소리를 듣기위해 침대에서 베개를 베지 않고 잠을 잤다니 아름답기 그지없습니다.

우리는 최근들어 사람을 잃는다는 것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며, 고향이 품고 낳은 선각자들을 어떻게 모셔야 할지를 하나 둘 배우고 있습니다. 유치환, 김춘수, 김상옥, 김용익 등 많은 예술인들이 우리 곁을 떠날 때만해도 그분들의 빈자리가 얼마나 큰지를 몰랐습니다.

이역만리에서 고향을 그리며 눈 감으신 윤이상 선생님이 돌아가 실 때에는 이렇게 한 자리에 모여 국화 한 송이 올리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2년 전 박경리 선생님을 떠나보내시는 계기를 맞아 이분들의 빈자리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고 왜 문화예술이 중요한지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오늘 화백님께서도 우리를 그 길로 이끌고 계십니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각자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면서 이들이 떠난 자리를 이어갈 후배들을 키워내는 일입니다. 이제 멸치를 사기위해 통영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문화를 사기위해 통영에 오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오늘 이 자리는 영결식 자리가 아니라 온 시민들이 공부하는 교실이기도 합니다.

전혁림 화백님.
친구들을 만나 통영에서의 소풍 이야기보따리를 마음껏 풀어 놓으시기 바랍니다.
부디 영면하소서.

김상영(통영시청 문화예술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