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충무로야사] 카페 화이어 버드 (영화인과 카페들)
[연재-충무로야사] 카페 화이어 버드 (영화인과 카페들)
  • 이진모 / 시나리오 작가(영상교육원 교수)
  • 승인 2010.09.08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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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카페 (화이어 버드)는 행사장이나 축제장처럼 붐볐다.
장안에서 멋깨나 내고 돈 좀 쓸 줄 안다는 친구들이 불나비처럼 모여들었다. 그 중에 연예인이나 영화인들이 끼어든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 이었다. 그러나 연예인이나 영화인들도 시쳇말로 아주 잘 나가는 사람 아니면 끼어들 수가 없었다.

그땐 국산양주가 희귀할 때고 대부분 미8군에서 흘러나온 군용양주 아니면 수입양주여서 값이 보통 비싼 게 아니었다. 영화배우 뺨치는 호스티스 아닌 여자들이 수십 명 씩 포진해 있거나 대기해 있어 주머니 사정이 웬만치 푼푼해도 마음 놓고 호기 부릴 만큼 녹녹한 곳이 아니었다. 이곳에 드나드는 여자들은 대부분 미스코리아나 영화배우, 가수 지망생 등 이었다. 

그녀들은 웬만한 인사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Y양의 눈싸인에 따라 VIP와 별 볼일 없는 손님을 구별했고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Y양은 미모 뿐 만 아니라 두뇌회전도 뛰어난 재기발랄한 여자였다. 그런 그녀가 영화감독 고영남에게 쉽게 빠져 든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본래 영화배우 지망생 이었을 만큼 잘생긴 외모에 충청도 시골 출신답게 소박하고 순수한 고영남 감독은 당시 (잃어버린 태양)이라는 청춘영화로 데뷔해 매우 촉망 받는 신인 감독이었기 때문이다. Y양의 부친은 미스코리아 심사 위원장, 시나리오 작가 겸 영화평론가, 연인은 촉망되는 차세대 영화감독, Y양에게는 자신의 신데렐라적 욕구를 능히 현실화 할 수 있는 상황이 눈앞에 찬란하게 펼쳐져 있었다. 

그러나... 인생과 호사는 항상 ‘그러나’가 문제였다. ‘그러나’라는 단서가 없는 인생과 호사는 너무 싱거워서 일까? Y양의 부친 Y선생은 이 두 사람 관계를 못 마땅하게 생각했다. 아니 못 마땅하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 두 사람이 관계를 지속한다면 Y양은 딸로써 고영남감독과는 영화계 후배로써 절연하겠다는 폭탄선언을 했다.

Y선생은 연령 차이는 있지만 평소 필자에게 꽤 선배의 정을 베풀었던 분이었다. 행사장이나 거리에서 만나면 친구들과 술이나 마시라면서 용돈도 주고 차비도 주곤 했다. 그의 가방은 어디서 돈이 생기는지 늘 지폐 다발이나 돈 봉투로 가득 차 있었다.

한번은 남산에 있던 시나리오 작가 협회 사무실에 예고 없이 불쑥 나타나 ‘야 이진모, 사무실이 왜 이렇게 쓸쓸하냐’ 하고 안타까운 듯 휘둘러보는 것 이었다. ‘네 요즘 영화계도 불황이고...’ Y선생은 이미 알고 있는 듯 내 말을 뚝 자르고 ‘야, 전화해서 다 나오라 그래’ 하면서 돈가방의 지퍼를 드르륵 열어 보였다. 가방 안엔 시퍼런 돈 다발이 빼꼭했다.

그날 밤 3, 40명의 회원들이 정릉 부근의 요정에서 밤새도록 마시고 Y선생과 동료 선배 작가인 윤삼육, 허 진, 이종호, 김하림, 한유림, 문상훈, 김문엽 등 술꾼들은 광화문과 인사동 부근에서 2,3차로 밤을 새운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때 (알렉산드리아)와 (바람과 구름과 비)로 유명했던 소설가 이병주씨, 시인이자 영화감독이었던 이봉래씨 등 문화계 저명한 인사들이 합석해 밤새도록 지난 이야기와 흘러간 노래로 여흥을 즐겼다.

각설하고 그렇게 호방하고 자유분방한 로맨티스트 Y선생이 왜 Y양과 고영남감독의 희망찬 러브스토리에 극구 반대 했을까? 사랑하는 딸의 장래를 더 큰 미래로 이끌어 주기 위한 결단 이었을까? 자신이 시나리오를 써주고 데뷔를 도와 줄 만큼 아끼고 다독였던 고영남감독의 앞날에 대한 우려나 노파심 이었을까?! 혹은 학업이고 뭣이고 다 때려치우고 명동 한 복판에 (화이어 버드)라는 전대미문의 카페를 개업해 카페문화(?)의 선두주자가 된 딸의 카페이름처럼 불새와 같은 타고난 끼에 대한 우려였을까?

아무튼 Y양과 고영남 감독의 사랑은 Y선생의 강력한 제동에 걸려 허리우드 영화 (러브스토리)처럼 슬픈 카페의 노래로 변주되기 시작했다.

이후 그들의 사랑의 역정은 Y선생의 강력한 제동에도 불구 하고 더 한층 불타올랐다는 후문을 들었으나 결국은 본의 아닌 헤어짐으로 마무리 되었다. 그리고 Y양은 서울 전역 번화가로 옮겨 다니면서 끈질기게 카페를 운영했고 고영남 감독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나름대로 영화계에서 중견 감독으로 발돋움해 갔다.
그러한 Y양과 고영남 감독의 러브스토리와는 관계없이 카페 (화이어 버드)에서는 마치 해프닝과 퍼포먼스 같은 스캔들이 드나드는 손님들에 의해 끊임없이 이어져 갔다.

(정리, 한상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