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 LDP 무용단 2015 정기공연
[공연 리뷰] LDP 무용단 2015 정기공연
  • 강다연 기자
  • 승인 2015.09.07 08: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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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안무가와의 협업, 여젼히 젊고 도전적인 LDP

LDP엔 국내 최고 수준의 무용수가 모였다. 이들은 어떤 안무도 두려움 없이 소화하는 탄탄한 실력을 지녔다. 대중가수 콘서트에서처럼, LDP 공연에서 팬들의 높은 환호성이 터지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무용수 실력뿐 아니라 단체의 태도도 도전적이다. 팬시한 작품으로 스타 무용수를 내세워 인기에 영합하기보단, 실험적 레퍼토리를 늘려 가며 단체의 내공을 쌓는 쪽에 힘을 싣는다. 텀블벅을 통해 이번 공연에 필요한 예산 일부를 모금하는 소셜 펀딩도 시도했다. 팬들은 무용수들에게 열광하는 소비의 방식을 넘어, 새로운 컨템포러리 작품을 생산하는 데도 기여한 것이다.

▲ 씨미렉의 작품을 연습하는 LDP 단원들

해외 초청 안무가와의 협업 선보여

창단 15주년 기념 공연에선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겠다며 기대감을 높인 LDP는 길서영, 야렉 씨미렉(Jarek Cemerek), 미샤 프루커(Micha Purucker) 세 안무가의 신작을 올렸다. 그리고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데는 확실히 성공했다.

씨미렉의 작품 'Heaves'는 이 날 프로그램 중 가장 직관적이었다. 일정한 속도로 달리는 기관차처럼 규칙적인 비트에 맞춰, 무용수들은 온몸이 불수의근인 것처럼 움직인다. 의지나 목표를 향해 움직이는 게 아니라 뭔가에 질질 끌려가는 듯한 동작이 이어진다. 그 모습이 마치 월요일 아침, 침대에서 일어나기 싫어 몸부림치는 직장인의 모습을 5배속으로 빨리 감기 한 듯하다.

기계적인 내레이션으로 '사람'이 아닌 '피고용인'에게 지침을 전하는 Radiohead의 'Fitter, Happier'라는 곡이 연상되는 안무였다. 우리의 몸은 높은 생산성을 위해 더 날씬하고 건강하게 관리된다. 아침 9시면 기계적으로 출근하고 성격이나 취향까지 일의 생산성에 맞춰진다. 내 몸이 온전히 내 것이 아닌 상황에서 절망적으로 넘어지는 모습을 섬세하게 표현한 무용수들의 연기가 돋보였다.

▲ 길서영의 작품 연습장면

회화적 미장센의 길서영 작품

길서영의 작품 'Social Factory'엔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처럼 머리 없는 신사들이 등장한다. 일상의 의미와 동작을 철저히 분리한 안무와 악몽을 꾸는 듯한 연극적 연출, 초현실주의 작품 같은 회화적 미장센이 강렬하다.

에드워드 호퍼가 그린 출구 없는 공간처럼 닫혀있는 작은 방에서 누군가 끊임없이 좌절한다. 그는 결국 몸을 구속하고, 실제보다 커 보이도록 만든 옷을 벗고 자신의 모습을 찾는다. 다행히 그가 되찾은 머리는 험티덤티 같은 기괴한 형상은 아니었다. 껍질 벗은 달팽이처럼 연약해 보이는 몸으로 돌아와 위태로운 비정형의 움직임을 보여주지만, 곧 자신의 리듬을 찾게 될 것이다.

여러 장르를 융합시킨 푸루커의 신작

1부를 구성한 이 두 작품은 어딘가 비슷한 콘셉트였다. 억지로 끌려가듯 움직이는 동작도 다소 겹쳐서, 신체를 더 다양하게 활용하는 움직임이 아쉽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이어지는 푸루커의 'Murmurs and Splotches'가 공연의 완성도를 더했다. 유체처럼 움직이다 어느 순간 방향성을 가지는가 하면, 사진 스튜디오에서 포즈를 취하는 듯한 구성도 활용하고, 옛날 비디오를 저속 재생하는 듯한 효과도 사용했다. 여러 장르의 특성을 뽑아와 무대화한 느낌이다. 하나의 커다란 그림을 잘게 잘라 아무런 맥락 없이 이어붙인 듯한 연출은, 오래된 유행가를 조각내 재구성한 배경음악과도 닮았다. '해체'라는 공연 콘셉트에 충실하게, 단순한 동작까지 철저하게 해체한 작품이기도 했다. 하지만 러닝 타임이 꽤 길었는데도 관객의 흥미를 계속 유지할만한 포인트가 부족한 건 아쉬웠다.

이번 공연에서 LDP는 밀도 있는 작품을 집중력 있게 끌고 나가며 15년 단체의 저력과 가능성을 동시에 보여줬다. 여전히 다음번 실험이 궁금한 단체다. 동시에, 댄싱9을 통해 형성된 팬덤을 계속 끌어갈 수 있는 대중적인 레퍼토리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