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리뷰] 예술로 생활을 채우는 모지선의 행복 주문, 「날마다 소풍」
[Book리뷰] 예술로 생활을 채우는 모지선의 행복 주문, 「날마다 소풍」
  • 이지완 기자
  • 승인 2021.12.16 00: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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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딸 협력으로 제작된 수필집 「날마다 소풍」
크라우드펀딩 모금액 246% 달성하며 출판
코로나 블루 이길 수 있는 모 작가의 예술 위로

[서울문화투데이 이지완 기자] 코로나19가 확산된 지 2년이 돼가고 있다. 백신 접종률도 높아지고, 단계적 일상회복 지침을 따르며 코로나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졌다. 하지만, 변이바이러스 등장과 코로나19 확진자 급증은 많은 이들을 코로나 블루에 빠지게 하고 있다. 화가면서 시, 수필도 쓰고 성악도 하는 예술인 모지선 작가가 코로나19로 절망에 빠진 우리들에게 응원을 전하는 책을 발간했다. 「우울한 코로나 시대의 “백신” 생각바꾸기, 날마다 소풍」 (아티모모, 15,000원/이하 「날마다 소풍」)다.

▲모지선 「우울한 코로나 시대의 “백신” 생각바꾸기, 날마다 소풍」 (사진=아티모모 제공)
▲모지선 「우울한 코로나 시대의 “백신” 생각바꾸기, 날마다 소풍」 (사진=아티모모 제공)

「날마다 소풍」은 화가인 70대 엄마 모지선 작가와 IT전문가 50대 딸 한보경이 협업해 만든 책이다. 지난 10월 텀블벅에서 크라운드펀딩을 시작해, 펀딩 금액을 246%나 달성하며 성공적으로 출판을 마쳤다. 책과 함께 작품 엽서 세트, 탁상 달력, 스카프 등의 아트 상품들도 출시돼 독자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다.

책은 모 작가의 평범한 일상을 테마로 글과 그림을 함께 담은 수필집이다. 모 작가는 엄마의 삶을 살아가면서, 35살에 첫 개인전을 열고 35회가 넘는 전시회를 개최하며 열정적인 화가의 삶도 살아왔다. 또한, 시와 수필을 써서 등단을 하고 성악도 배워 작은 음악회를 여는 등 다 방면으로 자신이 가진 예술적 재능을 펼쳐왔다. 올해 1월 제12회 서울문화투데이 문화대상(미술 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

모 작가의 딸 한보경씨는 늘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엄마를 닮아 책 읽기와 글쓰기를 좋아하는 그는 언젠가 엄마의 작품을 모아 책으로 발간하고 싶다는 꿈을 품고 살아왔다. 보경씨는 엄마의 재능을 물려받은 한편, 기술적 능력도 탁월해 사진작가로 활동하면서 기술전문가로 IT기업에 오랫동안 종사했다. 그리고, 지난해부터 자신의 오랜 꿈을 이루기 위해 ‘아티모모’라는 출판사를 차려 편집, 디자인, 출판을 실행했다. 엄마와 딸의 오랜 협연이 하나의 책으로 탄생하게 된 것이다.

크라운드 펀딩 당시 책 본문 소개 글에는 “눈이 침침하시다고요? 노안이 왔다고요? 이 책은 50대의 딸과 70대의 엄마가 만드는 책입니다. 조금 더 큰 폰트와 조금 넓은 행간으로 눈이 덜 피곤하게 만들었습니다.”라는 문장이 있다. 엄마와 딸의 재치와 행복감이 편집과 출판 과정에 담겨있는 듯 하다.

이번 책에는 모 작가가 2011년에 2년 간 독서신문에 연재했던 ‘그림이 있는 수필’ 연재 원고와 브런치(brunch.co.kr)에 연재한 글, 전시 리플릿에 적었던 글이 담겨있다. 모 작가의 첫 시집 『門 이야기』에 수록됐던 시와 최근 창작한 시도 실렸다. 이 모든 글은 모 작가 특유 화풍이 드러나는 그림과 함께 선보여진다. 특히, 이번 책은 IT기술자인 보경씨의 능력도 곳곳에 숨겨져 있다. 책 안에는 몇 개의 QR코드가 인쇄돼 있는데, 이는 모 작가의 그림을 움직이는 영상으로 만나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책에 수록된 QR코드 작품 (사진=아티모모 제공)

편집의 달인이 전하는 행복 레시피

모 작가는 본인을 ‘편집의 달인’이라고 칭한다. 명칭만 들으면, 편집의 달인이 무엇인가 의문이 들 수 있다. ‘편집의 달인’이란 안 좋은 기억이나, 내게 좋은 영향을 주지 않는 장면들을 내 일상에서 잘라내는 모 작가만의 생각 습관이다. 모 작가는 이번 책을 통해 우울한 코로나 시기를 견딜 수 있는 방법으로 ‘생각의 전환’을 제안한다.

「날마다 소풍」 Part1, 수록작 <편집의 달인>에는 가슴 찡한 모 작가의 일상이야기가 담겨있다. 쌀을 씻어서 밥솥에 넣어놨지만, 취사 버튼을 누르지 않은 모 작가는 아침밥을 준비 못했다. 어려서부터 단 한 번도 아침밥을 안 먹어본 적이 없었다는 남편은 아내인 모 작가에게 성을 내고 뚱한 표정으로 밥 대신 빵으로 식사를 해결했다.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 햇반도 없을 당시에 모 작가는 미안한 마음에 남편이 출근하기 전 한 마디를 건네고자 했다. 하지만, 남편은 되레 모 작가에게 마지막 일격을 날리고 만다. “예술이 밥 먹여줘? 밥이나 제대로 잘해!”라고 소리친 것이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큰 상처를 입고 주저앉았겠지만 이 일화에서 모 작가 특유의 행복 레시피가 열린다. “이 사건은 나중에 일어날 일이야. 지금은 없었던 일이야. 나는 지금 그림을 그리러 가야 하니까…. 일단 ‘Cut! 편집!’ 다음 장면으로 ‘Let's go!’”(「날마다 소풍」 45쪽) 라고 모 작가는 스스로 주문을 건다.

Part3 수록작 <주인님! 이러시면 아니 되옵니다. (방콕에서 재미있게 보는 방법)>에는 팬데믹 시국에 발휘되는 모 작가의 편집 기술이 나온다. 화가이자 성악가로 활동하고 있는 모 작가에게 팬데믹은 그의 주 무대를 빼앗은 기간이었다. 미술관, 공연장은 문을 닫았고 취미 생활을 할 수 있는 모임도 전면 금지된 상태다. “문을 닫지 않은 곳은 집밖에 없다.”(「날마다 소풍」 124쪽)라며 우울한 기색을 드러내기도 한다. 하지만, 이 순간 모 작가는 생각의 전환에 시동을 건다.

모 작가 스스로를 자신의 집에 출근하는 집사라고 여기며, 집안 청소를 시작하고 매일 무료하게 생각했던 일들에 책임감을 넣어 진행한다. 스스로 퇴근시간도 정해 일과를 마무리한 작가는 평범한 일상을 새롭게 바꿔보는 시도를 선보인다.

“언젠가 코로나가 종식되면 더 좋은 직장을 찾아가기 위해 나 자신의 값어치를 올려 놓아야겠기에 작업과 독서를 병행하며 나름 괜찮은 직장생활을 즐기자. 호호. 나의 특기가 편집의 달인이 아닌가.”(「날마다 소풍」 127쪽)라는 작가의 생활은 독자에게 신선한 감각을 전한다. 아무 데도 못 가는 팬데믹 상황을 새롭게 바라보는 예술가만의 놀이이자 치유 방법이 담긴 글은 우리를 색다르게 위로할 것으로 기대된다.

▲「날마다 소풍」 아트 상품인 스카프 (사진=아티모모 제공)

그림, 글, 음악이 모두 어우러진 「날마다 소풍」

모 작가는 그림, 글, 음악이 예술이라는 하나의 맥으로 이어진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 스스로가 성악, 문학, 그림을 모두 아우르는 전인적 예술가이기도 하다. 작가는 오래전 양평의 한적한 전원으로 이주했다. 이후, 마당에서 작은 음악회를 열기도 하고 작업실을 겸한 전시공간을 자택 옆으로 두고 회화작업도 꾸준히 이어나가고 있다. 생활 속의 예술, 예술의 생활화를 실천에 옮기고 있는 일상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날마다 소풍」에는 음악을 미술로 표현하는 모 작가의 화풍과 일상 속에서 소재를 얻어 화폭 위로 표현하는 그의 매 순간이 담겨있다. 챕터 곳곳마다 실려 있는 작품은 모 작가의 내면 세계를 표현하기도 하지만, 일상에서 사용한 기물들과 그의 작업실의 모습도 담고 있다. Part3에 수록된 <내 방의 어린왕자>(「날마다 소풍」 154,155쪽)는 모 작가의 내면 세계인듯 하면서 꿈과 희망, 위로를 전하는 오브제들을 담아내 따뜻한 유년시절도 떠오르게 한다. 실제로 있을 법한 공간들의 이미지는 외출이 쉽지 않은 코로나 시대에 독서를 통한 여행을 경험케 한다.

▲모지선 「날마다 소풍」 내지 (사진=아티모모 제공)

음악과 미술의 조화를 특별하게 느껴볼 수 있는 챕터는 ‘Part4 K-Classic을 그리다’이다. 이 장은 2012년 탁계석 예술비평가, 피아니스트이자 예술기획자 임동창과 함께 5일 간 양평에서 진행했던 페스티벌과 연주회 음악을 토대로 구성됐다. 이 챕터에는 특히 모 작가의 회화 작품이 많이 담겨 있다. 운율을 담은 듯한 선이 그려내는 누드 크로키들은 음악이 미술로 표현되는 순간을 만든다. <모여라 K-Classic comcert>(「날마다 소풍」 182,183쪽)에선 당시의 분위기와 자유로움, 예술성이 느껴진다. 모 작가가 가지고 있는 전인적 예술 재능이 돋보이는 챕터다.

「날마다 소풍」은 넓은 행간과 여백을 가지고 있는 책이다. 또한, 책 곳곳에는 백지로 남아있는 공간들이 있다. 이는 책을 읽는 독자가 모 작가의 작품과 글로 호흡하며 사유를 기록하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모 작가와 보경씨는 엄마와 딸이긴 하지만, 20년이 넘는 시간의 공백과 아날로그와 디지털이라는 다름을 가지고 있는 존재였다. 그럼에도 이 둘은 서로를 생각하고, 서로의 꿈을 응원하며 「날마다 소풍」이라는 하나의 책을 만들어냈다. 「날마다 소풍」은 코로나 시대에 단절되고 가라앉아있는 것 같은 우리 일상에 소통의 감정과 예술의 위로를 전하는 책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