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립미술관, 현대미술관 밀도 있는 주제 전달
[서울문화투데이 이은영 발행인ㆍ이지완 기자] “작품의 장르적 구별보다, 주제의 연관성, 공간과의 연결성을 고민해 작품을 배치했다” 지난 15일 제주도립미술관에서 열린 《제 3회 제주비엔날레》 언론공개회에서 전시 소개를 시작한 박남희 예술감독이 전한 말이다.
5년 만에 우리의 곁으로 다가온 《제 3회 제주비엔날레》가 개막했다. 내년 2월 12일까지 제주도립미술관, 제주현대미술관, 제주국제평화센터, 삼성혈, 가파도 AiR, 미술관옆집 제주 등 총 6개 전시장에서 개최된다.
지난 15일에는 1박 2일로 이뤄진 비엔날레부터가 진행됐다. 2일 간 제주 동서남북을 오가면서 작품을 보고, 작가와의 소통이 이뤄져 빡빡한 일정 속에서 진행됐다. 비엔날레 투어에는 취재진 및 제주 미술계 관계자, 비엔날레 출품 작가들이 함께 참석했다. 몇몇 작품의 경우 작가가 직접 작품 설명에 나서, 좀 더 깊이 있는 감상을 가능케 했다.
자연-제주, 밀도 있는 주제를 드러내는 ‘제주도립미술관’ 전시장
박 예술감독은 적어도 《제주비엔날레》를 감상하러 왔다면, 제주의 모든 자연은 느꼈으면 하는 바람에서 제주 곳곳에 흩어진 전시 장소를 택해 비엔날레를 진행하게 됐다고 한다. 비엔날레가 열리는 6개의 공간은 모두 독창적인 분위기와 주제의 연결성을 지니고 있어서, 비엔날레를 즐기는 데에 또 다른 즐거움을 전한다.
주제관인 제주도립미술관과 제주현대미술관은 비엔날레의 주제 ‘움직이는 달, 다가서는 땅’에 대한 이야기를 밀도 있게 전달한다. 제주도립미술관의 경우 외부 수변 공간 및 정원 공간을 활용해, 관람객들이 거닐면서도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 수변 공간에는 김주영 <뱃길 따라 - 망향(섬집; 무릉귤원)>과 최병훈 <태초의 잔상 2022> 등을 만나볼 수 있다. 제주도립미술관 내부에선 대형 회화 작품 및 설치 작품들을 선보이며, 작가들이 자연을 대하는 시선을 깊이 있게 전한다.
제주도립미술관 전시장에는 제주 원로 작가라고 할 수 있는 강요배, 백광익 작가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비엔날레 주제 및 제주의 자연을 깊이 있게 담아내고 있어, 미술관 내부로 제주의 자연 그 자체를 가지고 들어온 듯한 느낌을 만들어낸다.
강요배 <폭포 속으로>는 668cm의 높이를 가진 대작으로 제주의 물과 바람 자연의 장엄함을 드러낸다. 자연의 풍광이 단순한 객체가 아닌 주체의 심적 변화를 관통하듯 펼쳐진다. 작품 앞에 서면 실제 폭포 앞에 서있는 듯한 자연의 위대함과 자연 속에서 전이되는 웅장한 고요함을 느껴볼 수 있다.
백광익 <오름 위에 부는 바람>은 총 3점의 연작 작품이 전시된다. 간담회에서는 많은 취재진들이 바람결과 별빛을 표현한 것 같은 화면 속 세밀한 결에 눈길을 빼앗겼다. <오름 위에 부는 바람>은 오름을 표현하고 바람을 바라보는 형상에서 나아가 광활한 우주까지 담고 있는 작품이다. 화면에 담긴 세밀한 결은 순수한 행위의 반복으로 완성돼, 제주만의 풍광과 생명의 약동을 담는다.
제주의 풍광을 담아낸 작품들도 눈에 띈다. 박종갑 작가의 <문명_쌓다(積)>는 한지에 먹과 토분을 사용한 대형 수묵 작업이다. 작가에게 자연은 먼 과거부터 항상 인류와 함께하며 삶의 모태로서 인간의 사유에 많은 영향을 주어온 주체다. 작가는 제주를 이루고 있는 수많은 형태의 돌들에 얽혀있는 세월을 찾고, 돌과 돌 사이에 만들어진 공간 안에서 ‘길 위의 인류’를 바라본다.
실제 풍광을 눈 앞에 마주하고 있게 하는 듯한 유창훈 작가 <한라에서 성산까지>도 특별한 감흥을 전한다. 유창훈은 작업실에서 풍경 사진을 보고 작업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현장에 직접 가서 스케치로 작업을 시작한다. <한라에서 성산까지>는 제주의 동쪽에 위치한 백약이오름 정상에서 바라본 한라산과 성산일출봉까지의 모습이다. 제주의 풍광은 사계절이 다르고 아름다워 많은 예술 작품의 소재가 되고 있다. 진한 먹과 마른 붓을 사용해 작업한 작품은 장식적이기보다는 정신적이며 감성적이다.
제주태생의 제주 문화를 딛고 작업하는 강술생 작가의 <1분 삼각대와 씨앗이 남긴 것들>도 인상적이다. 강술생은 다양한 생명이 서로 성장하고 스러지는 관계성과 생존의 방식을 관찰하고 이를 작품화하는 생태예술가다. 최근에는 씨앗에 주목한 작업을 하고 있는데, 싹이 터 성장하고 사멸하는 자연의 순환 과정에서 생명의 가치를 발견해낸다. 500평의 땅에서 난 수수로 만든 제주 전통 저장고를 전시장 안으로 가져와 전시하면서, 시간의 응축을 전한다. 또한, 영상 작업 <1분 삼각대와 씨앗이 남긴 것들>은 작가가 자연과 소통하는 순간을 집약해놓은 것으로 ‘나’라는 관찰자가 ‘삼각대’가 돼 살아 숨 쉬는 듯이 느껴진 경험이 토대가 된다.
미디어 시각으로 만나는 제주현대미술관, 자연-도시‧과거-현재 고민케 해
제주현대미술관은 저지문화예술인마을 중심부에 자리하고 있다. 박 예술 감독은 ‘현대미술관’의 정체성에 좀 더 주목해, 이 곳에서는 미디어 작품을 주로 선보이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이곳에서는 자연과 물질 사이, 현대의 우리가 자주 마주할 수 있는 환경의 문제들을 상상해볼 수 있는 시각을 제안한다. 미디어 작가군의 작품으로, 동시대와 밀접한 고민을 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도립미술관과는 또 다른 매력을 전한다.
제주현대미술관 내부로 들어서기 전 주목할 만한 작품으로 김기대 <바실리카>라는 작품이 있다. 미술관 야외공간에 설치된 이 작품은 ‘농사’의 개념을 작품 속으로 그대로 가지고 들어온다. 비닐하우스를 만드는 골조와 재료로 초기 교회 바실리카 건축물을 만들었다. 김기대는 제주의 빈집 쓰레기 문제를 공간작품으로 드러내며, 제주 환경과 사회에 대한 대안을 제시한다.
<바실리카>는 미로 형태의 설치 작품으로 관람객들을 작품 안으로 들어가 바깥으로 걸어 나가는 방식으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작품 마지막에는 허리를 숙여야지만 통과할 수 있는 출구가 있는데, 작가는 ‘자신을 낮춘다면 비로소 밖으로 나가 자연을 다시 마주할 수 있다’라고 출구가 가진 의미를 전한다. 실제로 <바실리카>를 통과하고 마주하게 되는 자연의 풍광은 굉장히 웅장하게 다가온다. 불투명한 실내 공간을 벗어나 마주하는 자연은, 인간이 자주 잊고 사는 자연의 본모습을 일시적으로라도 마주할 수 있게 한다.
제주현대미술관에서는 주목할 만한 작품으로는 강이연 <무한>, 윤석남 <김만덕의 심장은 눈물이고 사랑이다>, 박능생 등이 있다. 강이연 <무한>은 1880년부터 현재까지 150년간의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 증가량을 반영한 작업이다. 원형 스크린을 투과한 빛이 흡수, 반사, 산란되는 과정을 거쳐 공간 자체로 퍼진다. 작품에 사용되는 영상은 후반부로 갈수록 속도와 형태가 격렬하게 변화하는데 이는 2000년 이후부터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는 이산화탄소 농도를 의미한다.
윤석남 <김만덕의 심장은 눈물이고 사랑이다>는 제주 출신 여성 사업가 김만덕을 기리는 작업이다. 제주의 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 김만덕을 소환하면서, ‘여성으로서 나’에 대한 고민을 이은 작가의 시선을 가지고 온다. 김만덕에 대한 시선은 박능생 작가 <제주-탐라 여지도>로 이어진다. <제주-탐라 여지도>는 군산 오름에서 바라본 제주의 모습이다. 작가는 도시 공간 속에서 체험하는 복합적 심상을 바탕으로 자연과 도시의 의미를 표현하고 해석한다. 직접 걸으면서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도시와 자연을 관찰하고 다양한 시각을 제안한다. 이 작품은 앞에 놓여있는 작은 목조각의 김만덕 상으로 더욱 완성된다. 김만덕의 시선은 도시와 자연,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우리의 삶과 세계에 대해 고민할 시간을 제안한다.
일상 속 예술 제안, 미술관옆집 제주
제주현대미술관을 나와서 10여 분 정도 걸으면 만날 수 있는 예술인 레지던시 미술관옆집 제주도 이번 비엔날레의 위성전시관이다. 이곳은 네이버 예약을 통해서만 관람할 수 있고, 관람시에는 레지던시 주인이 투어를 안내한다.
미술관옆집 제주에서는 리크릿 티라바닛 <검은 퇴비에 굴복하라>라는 예술적 생활 경험을 제안한다. 리크릿 티라바닛은 관객의 참여를 작품의 핵심으로 두며 공동체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작업을 한다. 작가는 미술관옆집 제주의 창고와 통로, 밭, 안방과 공방 등 공간 곳곳에 관람객을 초대한다. 이 작품은 ‘미술관옆집 제주’라는 공간의 생활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며 마지막에 리크릿 티라바닛의 레시피로 끓인 카레와 미술관옆집 제주에서 직접 빚은 막걸리를 함께 나눠먹는 것으로 이뤄져 있다. 관람객은 공간에 방문해 작가가 경험한 것들을 함께 공유하며 관계를 형성한다.
어떤 생활 공간 자체가 작품이 돼 관람객에게 다가오는 경험은 좀 더 다양한 감각으로 비엔날레를 느낄 수 있게 한다. 투어 당일에는 직접 빚은 막걸리를 맛 볼 순 없었고, 제주 막걸리를 함께 나눠 마시며 리크릿 티라바닛이 지향하는 예술세계를 느껴보는 자리가 마련됐다. (2편에 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