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리뷰-제주비엔날레(2)] 제주 동서남북 아우르며, ‘인간-자연’ 경계 없애는 실천적 시선 제안
[현장리뷰-제주비엔날레(2)] 제주 동서남북 아우르며, ‘인간-자연’ 경계 없애는 실천적 시선 제안
  • 이은영 발행인·이지완 기자
  • 승인 2022.11.22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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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옆집제주, 가파도, 삼성혈 등 전시 공간 돋보여
바다생물을 위로하는 홍이현숙 작가 퍼포먼스

[서울문화투데이 이은영 발행인·이지완 기자] (1편에 이어서) 위성전시관으로 사용되는 곳은 가파도, 미술관옆집 제주, 제주국제평화센터, 삼성혈 등이다. 미술관을 벗어난 장소에서 만나게 되는 작품들은 제주의 자연과 어우러져, 제주만이 낼 수 있는 감성을 자아낸다. 주제관에서는 밀도있는 의미를 전달했다면, 위성 전시관에서는 일상과 공간 속으로 녹아든 비엔날레를 경험해 볼 수 있게 한다.

▲아그네스 갈리오토 <초록 동굴> ⓒ서울문화투데이

제주-자연을 담은, 가파도

가파도에선 예술인 레지던시 가파도 AIR와 한 폐가 공간이 전시장소로 활용됐다. 이탈리아 작가 아그네스 갈리오토는 가파도에서 머물며, 폐가에 프레스코 작업 <초록 동굴>을 완성시켰다. 화산 폭발 후 먼지에 묻혀 있다가 후세에 빛을 보게 된 폼페이의 집처럼, 작가에게는 가파도 곳곳에 유기된 폐가들이 마치 대기 현상에 지배된 후 먼 미래의 인간에게 발견된 장소처럼 느껴졌다. 아그네스 갈리오토는 가파도의 자연과 생명에 대해 6개월간 연구한 결과를 폐가의 총 5개 방에 프레스코화로 그렸고, 각 방을 산 자와 죽은 자의 이야기가 서로 얽히고 공존하는 상상의 동굴로 만들었다. 폐가에 완성된 거대한 프레스코화는 마치 그 이야기와 서사가 가파도에 예전부터 존재해오고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러움을 드러낸다. 특히, 폐가가 된 이후 집안 곳곳에 남게 된 자연의 흔적들과 어우러지는 작품이 인상적이다.

▲ 가파도 AIR 예술인 레지던시 공간에 마련된 앤디 휴즈 아카이빙 자료 ⓒ서울문화투데이 

가파도에서는 특히 ‘바다’와 연관되는 작품을 많이 만나볼 수 있다. 가파도 AIR는 예술인 레지던시로 운영되면서, 동시에 전시장으로도 활용된다. 이곳에서는 작가들이 사용했던 공간에 작품이 창작된 과정을 연상할 수 있는 매개물을 선보인다. 대학 시절 서핑을 하던 도중 해안으로 밀려오는 쓰레기들을 보며 해양 환경에 관심을 가지게 된 앤디 휴즈는 이번 비엔날레에서 해양쓰레기에 대한 이야기를 선보인다.

앤디 휴즈는 가파도 AIR 예술인 레지던시 공간에 작은 어항 안에 해양 쓰레기를 담아 현재 바닷속에 떠다니고 있는 쓰레기들을 생각하게 한다. 작가는 지난 4개월 동안 가파도에서 지내며 발견한 플라스틱 쓰레기들에 초점을 맞추고, 음료수병처럼 하찮은 것들이 무한한 우주와 깊은 바다를 보는 관점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생각한다.

이러한 작가의 발상에서 시작된 작품은 가파도 해변에서 발견한 플라스틱병을 원형의 폴리카보네이트 프린트로 만든 작업 <SEE-THROUGH>로 형상화 된다. 이를 통해 관객들은 바다를 ‘투시’할 수 있게 한다.

▲홍이현숙 <가파도로 온 것들> 퍼포먼스 현장 ⓒ서울문화투데이 

비엔날레 투어가 이뤄졌던 날에는 글라스하우스 전시장을 투명하고 커다란 해양쓰레기를 담는 통으로 삼아 가파도 해안에 떠밀려온 쓰레기들 <가파도로 온 것들>의 작가 홍이현숙의 퍼포먼스도 있었다. 쓰레기 아래로 가라앉아 죽어가야 만 했던 바다생물들을 위한 제의 의식이다. 그들을 위로하는 제의문을 읽고, 제의에 참여한 사람들 한 명씩 바다 생물들의 이름을 부르며 원을 돈다. 이 날 퍼포먼스에는 가오리, 골뱅이, 낙시, 임연수, 도다리 등의 바다 생물이 불려졌고, 퍼포먼스에 참여한 이들은 “낙지, 낙지, 사바하. 낙지”라고 외치며 바다 생물을 위로했다. 바다의 생명을 위로하고 그들이 본연의 삶을 이어나가며 인간과 함께하기를 소망하는 자연 공생의 의미를 담고 있다.

▲이승수 <불피우는 자리> 설치 전경 ⓒ서울문화투데이

제주 사람, 역사, 신화 마주한 제주국제평화센터‧삼성혈

중문관광단지 내 있는 제주국제평화센터는 ‘세계평화의 섬’ 제주를 상징하는 랜드마크 시설이다. 이곳에는 이승수 <불피우는 자리>, 준초이 <바다 어멍 해녀> 시리즈가 전시 된다. 두 작품 모두 제주 해녀를 소재로 한 작품이다. <불피우는 자리>는 해녀의 물옷, 오리발 등의 오브제들과 영상을 하나의 설치 작업으로 표현한 작업으로, 작가는 비엔날레를 준비하며 매일같이 어촌계를 돌아다니며 물옷을 구하러 다녔다고 한다. 준초이는 1년 동안 우도에서 해녀들과 함께 해녀들의 삶과 자취를 담아낸 작업들을 선보인다. 우리네 일상과 아주 가까운 그녀들의 모습에서 삶의 역동성과 제주의 분위기를 느껴볼 수 있다.

▲준초이 <바다 어멍 해녀> 시리즈 ⓒ서울문화투데이

위성전시관으로 활용되는 삼성혈은 제주도 개벽 신화의 장소로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134호다. 삼성혈은 제주도의 고씨·양씨·부씨의 시조가 솟아났다는 3개 구멍을 말한다. 이곳에서는 팅통창, 박지혜, 신예선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제주의 신화를 소재로 자연과 어우러지는 작품을 선보인다.

▲박지혜 작가 <세 개의 문과 하나의 거울> ⓒ서울문화투데이

특히 박지혜의 <세 개의 문과 하나의 거울>은 삼성혈 유적지 숲속 한 가운데에 배치됐다. 박지혜는 탐라국 전설이 내려오는 장소를 현실의 공간과 교차시켜 생기는 모호한 경계를 영화적 이미지를 통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제주의 신화적 시공간에 살고 있는 제주도민과 관광 및 다른 목적으로 방문하는 타지인들이 서로 공감하고 공유할 수 있는 새로운 관계의 시공간을 발생시키는 작품이다. 팅통창의 <푸른 바다 여인들>도 제주 신화를 바탕으로 한다. 삼성혈과 김녕사굴 설화를 연구해 이를 해체, 재구성한 영상 작품이다. 또한, 음악 작가와 협력해 제주도 민요를 연구하면서 어망, 부표, 조개, 바위를 활용한 독특한 악기를 만들었다.

▲팅통창 작가 <푸른 바다 여인들> (사진=제주비엔날레 제공)

비엔날레 투어, 제주가 가진 자연의 힘 알게 해

《제 3회 제주비엔날레》는 여러 우여곡절 속에서 다시 한 번의 여정을 시작했다. 비엔날레 시작 전 다수의 사람들이 왜 굳이 ‘제주’에서 ‘비엔날레’를 개최해야하는 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그러한 걱정과 기대 때문인지, 1박 2일간의 비엔날레 투어에는 작가와 미술계관계자, 취재진을 포함해 100여 명의 인파가 함께 이동했다. 박 예술감독은 공식적인 작품 해설 이외에도 수시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작가의 세계관을 설명하기 위해 바쁜 행보를 보였다.

아그네스 갈리오토 <초록동굴>이 전시된 폐가에는 취재 인파가 한 번에 출입할 수 없어서 천천히 현장을 나눠서 둘러봐야 할 정도였다. 한 취재진은 “이 집이 건축되고 난 이래에 사람들이 제일 많이 방문한 날일 것”이라는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가파도' 폐가 아그네스 갈리오토 <초록동굴>이 전시된 공간, 투어 현장 ⓒ서울문화투데이

적어도 이번 《제 3회 제주비엔날레》는 ‘비엔날레의 존폐, 제주에서 개막해야하는 이유’라는 의문에 답을 전할 수 있는 미술 행사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인류세를 맞이한 지금, 제주비엔날레는 시대적으로 우리가 어떤 시선을 가져야하는지에 대한 제안하고 있다. 여섯 곳의 전시장을 활용하면서, 제주가 가지고 있는 자연, 바다, 신화를 놓치지 않고 선보이려고 한 점 또한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화이트큐브 전시장을 벗어난 작품들은 자연 속에 녹아든다. 제주도립미술관 뒷마당에 설치된 김주영 작가의 <흙의 제식> 제단, 삼성혈 유적지에 설치된 박지혜 작가 <세 개의 문과 하나의 거울>이 그러하다. 가끔 어떤 작품들은 이질적인 존재인 것 마냥 자연에 우뚝 서있고, 그런 이질감을 드러내고자한다. 하지만, 이번 비엔날레에서 예술과 자연은 어우러지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특히, 가파도에서 진행됐던 퍼포먼스는 섬이라는 제주의 특성과 본질, 물성을 잘 살린 퍼포먼스이자, 제주 사람들이 자신들의 삶의 터전인 바다를 신성시하며 바다와 교감하고자 했다는 점에 주목해 깊이감을 더했다.

▲제주도립미술관 투어 현장 ⓒ서울문화투데이

앞으로 펼쳐질 세계에서 과연 인간은 어떤 태도로 살아나가야 할까. 제주비엔날레는 ‘내려오기’, ‘허리를 굽히기’라고 제안하고 있는 듯하다. 허리를 숙여야지 광활한 자연을 마주할 수 있다는 김기대 작가의 말이 더욱 또렷하게 들린다. 서로 다른 종들의 위치와 역할에서 내려와 함께 마주보고 연대하며, 인간중심적 시선에 벗어나서 인간 또한 자연의 일부분이라는 것을 느끼게 하는 것이 이 비엔날레가 전하고자 한 흐름이 아닐까 싶다.

제주는 섬이면서, 동시에 오름을 지니고 있는 산과 바다, 물과 흙이 어우러진 공간이다. 이 공간은 자연을 이루고 있는 모든 물질을 암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비엔날레는 묵묵히 존재한 자연의 물질 위로 ‘제주의 사람’ 즉 신화의 시작까지 살포시 얹으며, 인간을 얘기한다. ‘움직이는 달, 다가서는 땅’이라는 주제 속 끊임없는 호흡과 순환이 공간과 작품으로 모두 와닿는 비엔날레다.